이스라엘 무덤은 동굴이었다. 시신을 흰 붕대 같은 것으로 감아 동굴 안에 안치시키는 풍습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할 수 있는 형태로 부자는 동굴 안에 집처럼 짓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동굴 입구는 커다란 돌 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수는 나사못에 시체가 안치된 무덤 앞으로 가서 석문을 치우라고 한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석문을 치우자 냄새가 밖으로 나오므로 멈춘 것 같다. 그녀는 이미 체념한 것 같다. 시체에서 부패가 일어나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니 의학적으로도 살아남을 희망이 없을 게 분명하다.
예수님은 건조한 말씀이다.40 예수가 마르다에게 말했다. "신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사람들은 실현 가능한 사실만 믿으려 한다. 당연히 가짜뉴스를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은 말 그대로 가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과학적 의학적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신을 믿는 것이다. 신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전능하신 분이다. 사람과 과학과 의학을 신이 창조했다. 하느님은 얼마든지 세상의 진리를 뒤집을 수 있는 분이다.
마르다는 의학적으로 이미 끝난 나사로의 죽음을 믿었지만 창조주 예수는 믿을 수 없었다. 그 분은 사람을 죽이고 돕고 영혼을 멸망시키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사역에 물심양면으로 동역한 최대의 공적이다. 사랑하는 형이 죽기 전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치료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오지 않았다. 결국 형은 죽었다. 말다는 절망했다. 의심받고 신뢰의 세계에 대혼란이 빚어졌다.
"다른 사람 병은 다 고쳤는데 오빠는 왜 무시했어?" 왜 우리 오빠는 버렸어? 왜 오빠 죽어야 돼? 마르고 나서야 느낀 혼란은 공감이 간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뒤에야 무덤이 어디냐고 물으며 석문을 치우라는 예수님이 어떻게 보였을까. 원망스럽고, 미워서, 모든 것이 싫었던 것이다.
창조주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려 하는 데 장애가 나타난 것이다.믿으면 신의 영광을 본다고 하신다. 어떻게 하면 신의 영광을 볼 수 있을까.
1) 불신의 돌 치우면 된다
죽은 물가에 생명을 불어넣어 다시 살리려 하지만 가장 먼저 걸림돌로 나타난 것은 건조였다. 예수님은 말루다의 불신을 꾸짖으셨다. 무덤을 막고 있는 석문을 치우기 전에 내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는 불신의 돌부터 치워야 한다. 살 빠진다는 말을 듣기는 많이 들었어. 하지만 커다란 석문이 가려져 안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모두 내동댕이쳐졌다.
예수 어머니 마리아처럼 주님의 여종이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 믿는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100% 받아들였을 때 주님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 닫힌 마음에는 말이 들어가지 못하고 말씨가 나오지 않으니 은혜가 없다. 많은 사람의 말을 들음으로써 인생은 건조하고 기쁨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누군가 석문을 치운다. 누구였는지 이름은 안 나와 예수의 말씀을 믿고 받들어 신의 영광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즉시 복종하여 석문을 치웠다.
주연보다 엑스트라 역할이 더 임팩트 있을 때가 있다. 마루다가 주연이지만 이름 없는 엑토슬라 역할이 임팩트 있었다. 감독의 의도를 간파했다. 감독이 무엇을 의도하는지를 집중 연구한 엑스트라는 OK컷을 한꺼번에 받아내고 다음 작품에는 중요한 역할로 캐스팅된다.
신은 많은 것과 교만한 것보다는 순전히 자식처럼 따르는 사람을 찾는다. 그를 통해 신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는 그 주인공으로 사용된다.
2. 절망과 고통의 죄수 벗기면 돼
예수는 나사로 파묻혀 있는 무덤을 향해 말씀하셨다.이렇게 말한 후에 큰 소리로 "나사로 나와"라고 외치니 44 죽은 사람이 나왔다. 예수는 손발이 천으로 덮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덮여 있었다. "그를 석방하시오."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내가 나은 사람이 무덤 속에서 두 발로 걸어 나왔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혼비백산해서 달아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 몸을 닫고 있는 천을 풀고 자유롭게 다니라고 하셨다. 나사에서는 살아났다. 그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옷감을 감싸고 있던 하얀 천은 죽음의 절망 포기를 뜻한다. 예수는 그 모든 것을 벗겨 달라고 한 것이다. 예수의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과 절망과 끝이 끝이 난다. 거기서부터 생명희망 시작의 생명이 시작된다. 신의 영광을 보려면 절망과 고통의 죄수들을 제거하면 된다.
남이 입고 있는 절망과 고통의 수의는 내가 벗기면 되지만 내가 입고 있는 절망과 고통의 죄수를 누가 벗길 것인가. 내가 남들이 입고 있는 절망과 고통의 죄수를 어떻게 벗길 것인가. 죽음의 무덤에 가야하는데 무서워서 어떻게 갈 수 있겠니?
옷을 입고 무장을 하면 내가 입고 있는 모든 죄수복을 벗어 던질 수 있다. 언어 능력이 대머리가 되어 준다. 그리고 자유의 영혼과 몸이 되었으므로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공포의 영이 떠나니 죽음의 영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죄수의 영을 벗길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신의 영광을 얻게 된다.
3. 예수님을 선택하면 돼
장례식에 온 조문객이 이 사건을 목격했다. 그들의 반응이 두 패로 갈라지다
45 마리아 품에 와서 예수의 행동을 본 유대인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됐다.46 하지만 그 중 몇몇은 그들에게 바리세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가 한 일을 알렸다.
예수를 믿은 사람들과 믿지 않고 바리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린 사람들로 나뉜다.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은 아니다. 자연적인 눈으로 보는 눈만이 눈이 아니다. 영안이 열려야 한다.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은 영혼의 비늘이 벗겨지면서 예수를 신으로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동시에 목격하고도 영의 비늘이 벗겨지지 않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이들은 현세의 삶이 더 중요했다. 바리새파 라인을 잡고 싶었다. 당장 먹고사는게 더 급했던 것 같아. 신뢰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내일의 사건도 아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 이미 이루신 것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믿는다는 사람이 많아. 경제적으로 회복되면 봉사하고 구제하겠다는 성도들이 있다. 오늘 순종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아멘
나는 신의 영광을 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말씀을 묵상할 때 신의 영광을 본다.말씀 속에서 신의 마음을 찾기 위해 집중할 때 신의 영광을 본다. 내가 몰랐던 진리를 발견하고 그동안 스쳐간 말들이 내 눈앞에 또렷이 나타날 때 나는 신의 영광을 경험한다. 그때 난 온몸에 전기 같은 전율을 느낀다.
사역을 할 때 신의 영광을 본다 최근 사역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신앙이 성장하는 성도의 모습 속에서 신의 영광을 본다. 수레바퀴 달린 교회 사역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누린다. 이것이 신의 은총이며 신이 살아 있음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다. 정말 감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에서 그 영광의 주인공이 되길 간절히 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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